천신만고 끝에 탄생한 성모꽃마을에서 그는 수많은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을 지켜봤다.
보험금을 타서 자식의 빚을 갚기 위해 유방암 말기 선고를 받을 때까지 암을 키워온 어머니,
평생 아버지 노릇을 못해 미안하다며 마지막 순간 식구에게 화해를 청한 56세 췌장암 환자,
양쪽 겨드랑이에 달린 아기 머리만한 암덩어리에서 쉴 새 없이 피 섞인 진물이 흘러나와도
라면 국물 한 숟갈을 떠먹고 열쇠고리 1개를 선물 받고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이라고 말하던 19세 소녀….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성모꽃마을에서 못다 한
삶의 응어리를 풀고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폐에서 물을 빼는 작업을 거부하고 12시간 동안 죽음의 순간을 준비했던 한 40대 가장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는 매일 폐에서 물을 빼내야 연명할 수 있는 사람인데
‘맑은 정신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며 결국 죽음을 택한 거지요.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아내와 두 자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서로에게 더 이상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말이죠.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한결같이 생을 깨끗하게 마감하며,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납니다.
해마다 6만4000여명이 암으로 사망하는데 그중 평온한 죽음을 맞는 사람은 5%에 불과하다니,
이분들은 행복한 소수에 속하지요.” 성모꽃마을에 온 말기암 환자들은 대부분
“이전보다 통증이 많이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박 신부는 그 이유에 대해 “환자의 육체적 아픔을 덜어줄 뿐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고민도
해결해주려고 애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사지나 대체요법 등으로 환자의 아픔을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환자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의미 있었다’는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망이 남지 않도록 환자가 주위 사람들과 화해할 기회도 마련해줘야 해요.
일단 이곳에 오면 병원비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니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집니다.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는 환자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자녀의 일자리를 소개하거나
학비를 보조받는 방법을 알아봐주기도 합니다. 이렇듯 환자가 편히 떠날 수 있도록
육체적, 정신적, 영적, 사회적 도움을 줌으로써 진정한 호스피스의 임무가 완성되는 겁니다.”
성모꽃마을은 회원과 독지가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국가의 보조도, 환자에게서 입원비도 받지 않는다.
운영비는 박 신부와 자원봉사자들이 각탕기(脚湯器)와 산양산삼,
그리고 박 신부의 호스피스 사목일기를 모은 책 ‘이 목 좀 따줘!’를 팔아 보탠다.
“운영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 신부는 “곤궁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하느님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도와주시더라”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신앙의 힘으로 버틴다지만 평생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터. 통상 암환자 가족은 간병과정에서 얻은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 때문에
소독약 냄새에도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온화한 표정의 박 신부에게서 지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사실 한 분이 돌아가시고 또 다른 환자가 들어올 때마다 중압감을 느낍니다.
‘이분을 어떻게 편히 보내드릴까’ 걱정이 되어서 말이죠.
이 일은 평생 끝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지요.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제대로 마감시켰다는 보람이 훨씬 큽니다.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이 땅에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구나’ 하는
소중한 가르침을 얻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