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번역을 마치며:
박창환 신부의 말기암 환자 호스피스 사목 일기, ‘이 목 좀 따 줘!’
한국성당에 조 신부님이 동료 신부님이 쓰신 책, ‘이 목 좀 따 줘!’를 영어로 번역하라고 하셨다. 영어를 잘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이 내심 기뻤다. 쉽게 대답은 했지만 막상 번역을 하려고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어도 영어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각 장에 나오는 환자들은 하나같이 경제적 빈곤, 가정 파괴, 또는 폭력 속에서 고통을 받았고, 그리고 끝내 암에 걸려 고통을 겪으며 죽음을 맞는 거다.
난 사람이 죽는 과정을 보지는 못했다. 말은 들어 보았지만 귀담아듣지를 않았다. 책에서 나오는 대로 임종시 마지막 숨을 몰아 쉬어 보았다. 그들의 증상을 상상하며 나도 환자가 돼 보았다. 서러움에 통곡을 하며 울고 싶으나 눈물이 안나온다. 가슴만 답답하고 메어질 것 같았다. 스토리가 바뀔 때마다 고통 아닌 고통을 겪었다. 신부님께 말씀드린 것이 있으니 책임은 져야겠고, 생고생이라고 투정을 부렸다.
편안히 앉아서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간호를 하고 보살피는 신부님, 간호사, 그리고 봉사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초월한 사랑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들과 함께 살며 죽음을 달랠 수 있는 건가? 번역 시작한 지 일 년 반이 지나서야, 이제 저자 신부님이 책을 쓰신 뜻을 알 것만 같다.
환자들은 비록 힘든 삶을 살았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성모 꽃마을에 와서 봉사자들의 조건없는 사랑을 받고 누구 못지 않게 준비된 평화로운 죽음을 맞았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아기의 탄생을 준비하듯 죽음도 준비해야 한다. 호스피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암환자들의 육체적 고통이 얼마나 심한가를 나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첫 아이 나을 때, 오 분 간격으로 몇 시간 동안 생살 찢어지는 진통을 겪으며 자연분만하겠다는 나의 독한 마음도 결국 무릎을 꿇고, 아픔에서 무조건 벗어나게 해 달라고 호소했었다.
진통이야 몇 시간이지만 암의 고통은 죽는 순간까지 피를 말리는 고문일 것 같다. 아픔에 시달려 오죽하면 죽게 해 달라고 호소를 하겠는가. 안락사가 해결책이 아니다. 통증을 없애 주거나 덜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마음에 여유가 생겨 모든 것을 용서하고 용서받고 마지막 순간에 가볍게 떠날 수게 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다운 죽음일 것 같다.
성모 꽃마을과 같은 시설에 가지 못하는 환자를 위하여 가정방문 형식으로 되어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호스피스가 필요할 것 같다. 환자 외에, 주위에 사랑하는 가족의 슬픔이나 정신적 부담을 덜어 주는 것도 호스피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책으로 나오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어떠한 경로를 거칠 것인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싹이 텃다. 좋은 결실을 보아, 봉사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고, 세상을 떠나신 영혼을 기리며, 또 한 영혼이 보호 받고 구제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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