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일기 에세이

넋두리

윤재영 2007. 1. 27. 03:43

넋두리

 

 

찌푸등 흐린 날이 며칠 동안이었나 수도 없다. 그사이에 겨울비도 다녀갔고 벽난로에 불도 피워 머시멜로도 구워먹었다. 따시게 해서 꼬닥꼬닥 졸기도 했다. 피고 집앞에 동백꽃, 추워도 춥다 소리 하고 매일같이 반겨주는 그들이 나의 맥박을 뛰게 한다. 살아 있음이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주고, 책상 앞에서 혼자 놀다가,  아이들 데려오고, 저녁하고, 설거지하고, 그리고 자는 것이 나의 일과이다. 개미처럼 그리고 기계처럼.

 

담배를 물고 연기를 뿜어 내며 깊은 생각에 잠기듯, 껌을 꺼내 껍데기를 벗기고 입속에 넣는다. 오물오물 단물 삼키고 따그닥 따그닥 뇌를 자극한다. 단물 빼먹고 남은 찐덕이를 책상 밑에 붙인다. 하나, , , …. 오돌도돌 주르르 붙어 있다. 남편이 알면 뒤집어 거다. 후후후.

 

한국에 계신 친정어머니, 벌써 여든다섯 되셨다. 하지만, 전화 속에서 어머니는 늙지 않으신다. “ 일도 좋지만, 애들 잘해 먹이고, 남편 보살펴 줘라.” 녹음기라도 틀어 놓은 것처럼 매번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엄만 아직도 내가 삼십대 초반인지 아시나 보다. 하기야……

 

먹다 남은 음식 버릴 없어 먹어치운다. 아직은 치수를 바꿀 때가 아니지만 야곰야곰 허벅지에 배에 무섭게 살이 달라붙고 있다. 이러면 되는데, 오늘 밤에는 나가 뛰어야겠다. 

 

매일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운다고 하시던 시어머니의 푸념이 나의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음식을 하시니, 외롭다 하신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기까지 아직 사오 남았다. , 내일 걱정은 내일 하기로 하고, 오늘도 굽고 지지고 볶자. 오늘 저녁은 닭국, 집안에 감기 기운이 돌면 무조건 먹는 우리 감기약이다.

 

마음이야 이팔청춘이지만 몸이 늙어가니 말이 없다. 달팽이가 껍데기에 의지해 살듯, 형체 없는 나는 몸에 철저하게 의지한 , 필연의 관계를 맺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몸이 죽으면 생각은 어떻게 될까? 히구,  청승, 접어 두자, 우선 할 일부터 해 놓고.

 

그러고 보니 오늘 화창한 날이다.  움츠려지는 추운 날에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마는, 그래도 창가의 햇살에 반가운 임 만난 듯 가슴 설레인다. 그래, 아직은 시들 때가 아니다. 머리에 염색을 하고 거울을 보았다. 그사이에 길어진 머리를 곱게 빗어 뒤로 묶었다.

 

날씨가 따사해지면 유채색 옷을 사러 시장에 나가야겠다

 

 

 

 

2007년 1월 26일

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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