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 터진 컴퓨터에게
//윤재영
컴퓨터야, 이 바부야
왜 이렇게 느려 터지느냐그렇게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빨리 찰칵찰칵 돌아갈 수 없느냐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라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겠느냐
두드리는 대로 얻어터지고
욕하는 대로 얻어먹으면서도
알아서 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만 하느냐
실수로 무지해서 홧김에
내 뱃은 것까지도 진담으로 알고
다 기억하고 있으면 어쩌란 말이냐
쌩쌩 달나라 가는 세상에
어느 천 년을 기다리게 하느냐
그래도 정이 들어 붙들고 있다마는
속 터져 죽겄다
답답해 죽겄다
컴퓨터가 주인에게
//윤재영
성질 급한 컴퓨터 주인아
너만 답답하냐 나도 답답하다
왜 이렇게 날 못살게 구느냐
백 원짜리 사놓고 만 원짜리 기대를 하면 되겠느냐
내 비록 빠르지는 못하지만
해 줄 것은 다 해주고 하라는 대로 다 해왔다
어중이떠중이를 불러들여 시중을 들게 하여도
불평 한마디 안 하고
하루도 쉬지 못하고 너를 위해 살아왔다
나이가 들고 몸이 무거워져
조금 늦게 돌아간다고
이것저것 꾹꾹 눌러대며 난리를 치느냐
힘이 들어 빙빙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재촉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자꾸 눌러 봐라. 더 늦어진다
넌 기억조차 못 하지만
살아 있는 한 난 다 기억한다
네가 한 번 누를 때
나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 알기나 하느냐
말해 보았자 통하지도 않을 테니 그만두자
자꾸 그러면 나도 배짱이다. 그냥 멈추고 말 거다
혼자 열받아 식식거리면 너만 손해다
투자해 성능이 좋은 걸 사던가
돈이 아까우면 놀부 심보를 버리고
기다리는 걸 배우거라
살아가는 데는 순서가 있고 시간이 필요한 거다
나도 할 만큼 다하고 있으니
좀 기다려라
곧 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