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된 원고

시집 "샘물" 제 3 장

윤재영 2015. 9. 1. 11:54

 

 

 

축제

 

 

죽음은 야금야금

꿈속을 어지럽혔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세상은 다시 생기가 돈다

 

 

모진 풍파 견디어 낸

검은 그림자 사이사이

파릇파릇 재잘거리는

생명의 가장무도회

 

 

만남의 희열 속에

노래하는 새들과

뛰노는 다람쥐

노랗게 날리는 꽃가루 애증

 

 

 

 

 

초록 입구에서

 

 

갑자기 몰아 친 으름장에

노랗게 질렸다

회오리바람 천둥번개 몰고 와

우박까지 떨구는 호통에

초록 새내기 덜덜 떨었다

 

 

그냥 지나가면 안 되나

꼭 그렇게 한바탕 해야 하나

놀란 새들 가슴 훑어 내리고

갓 피어난 아기 풀들

영문도 모르고 생글거린다

 

 

세상은 다시 초록으로 덮이고

언제 그랬더냐

한 여름 밤의 꿈이 시작된다

 

 

 

 

 

 

상처

 

 

마음의 상처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받는 것이 아닐까

 

 

예수는 당신께 침을 뱉은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엄마가 품에 있는 갓난아기의

모든 것을 받아주듯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큰 사랑에는

상처가 남지 않는다

 

 

그 위대한 힘이

내 안에 있는 것도 모르고

남의 탓만 하고 있었다

 

 

 

 

 

천지天地차이

 

 

생각할 수 있고 없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다

 

 

깨어 있으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꿈을 꾸나 꿈속에선 그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현실과 꿈이 다를 바 무엇인가

모르면 끌려가고

알면 선택할 수 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우리에겐

알아차릴 기회가 있다

혼자서 하기 어렵기에 우린

서로의 도움이 필요한가 보다

 

 

 

 

그냥 그런 것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

좋은 것이 있으면 싫은 것도 있다

크고 작고의 차이일 뿐

 

 

평화 뒤에는

쓰라린 고통이 있었고

행복 뒤에는

가슴 치는 슬픔이 있었다

그러므로

나의 기쁨 뒤에는

누군가의 아픔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근심

 

 

급한 일도

급한 것도 아닌데

노란불 유혹에

빨간불 지나갔다

 

 

문제는 없었다마는

그 일로 인해

삶이 어떻게 바뀔 지

그건 모른다

 

 

차 트렁크에 실은

빈 김치 병들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협박에

불안, 불안하다

 

 

 

 

 

불청객

 

 

'앵앵' 모기가

어디를 치려나 공포에 떤다

잠시 조용한가 했더니

이미 때는 늦었다

벌건 자국을 남겨놓고

사라져 버렸다

 

 

두고 보자고 하지만 그때뿐이다

그들의 생명이 걸렸기에

막을 길 없다

낚시에 물고기 걸리듯

재수 없으면 걸리는 거다

모기장을 치고 자는 수밖에

 

 

 

 

 

 

미스테리

 

 

어데서 어떻게 돌아다니다

때가 되니 잊지 않고 날아든다

 

 

비좁은 둥지에 꼬물꼬물

여러 마리 제비새끼

눈도 못 뜬 솜털이

입만 커서 짹짹 거리고

어미 새는 먹이고 치우고

뼈 빠지게 일 한다

 

 

어느새 커서 빨래 줄에 조르르

걸음마 시키고 나는 것 가르치고는

한 더위 지나면 공중에서 한 바퀴

자식들 데리고 가버린다

 

 

그 중에 한 마리

내년에도 짝을 데리고 찾아오리라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하얀 눈 위

세상이 멈춘 저녁

하얀 꿈의 세상이 펼쳐진다

 

 

소복이 펼쳐진 눈 위를

다시 사라질 거리를

아무도 밟지 않은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걸었다

존재를 확인하고 싶음이다

너와 나만의 비밀

희열 속에 환호를 질렀다

나는 살아있다

 

 

 

밤안개

 

 

이승과 저승

수 없는 영혼과 영혼이

교감하는 시간

 

 

울고 싶어도 울 수 없고

머물고 싶어도 머물 수 없는

나의 무게는 얼마이며

어디에 있는가?

 

 

헤드라이트 불빛에

한치 앞 겨우 보이는

찻길에 하얀 선을 따라

정신 바짝 차리고

살금살금 차를 몬다

검은 물체가 지나갔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할 말없다

 

 

친정집 옆집 삶도 얄궂다

전전긍긍하더니만

이제는 무당집이 되었다

 

 

새벽부터 ‘둥둥둥’

동양 철학인가

잡신의 장난인가

내 혼이 둥실거린다

어머니와 난 얼른

찬송가를 틀었다

 

 

할 말이 없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연결 고리

 

 

있어도 없어도 되는

물 한 방울 모여 샘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세포들이 모여

한 몸이 형성되고

그 한 몸 지구를 이룬다

지구는 태양계에

태양은 은하계에

우린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은 뛰고

음식을 섭취하면

오장육부가 알아서 하고 있다

누군가 그렇게 작동시켜 놓았다

결국, 난 지구의 한 세포가 아닐까

 

 

 

 

 

바둑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 차례 네 차례

작은 판 큰 판

인생 판이 펼쳐진다

 

 

막아야 할 때가 있고

밀고 나가야 할 때가 있다

한 순간의 결정으로

승부가 날 수 있다

한 판 이겼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진 것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으니까

 

 

마지막 그 순간까지

누가 이길지 아무도 모른다

 

 

 

 

 

흙 앞에서

 

 

꽃이 피고 지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묵묵히 지켜주고만 있다

 

 

붉은 피 토하도록 파헤쳐도

아픔을 내색도 않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끼얹어도

다 받아주고

아무리 밟고 다녀도

불평불만이 없다

 

 

그저 주기만 하는

그대는 도대체 누구인가

 

 

 

 

가을 소낙비

누가 소낙비 아니랄까

어둑어둑해지더니 쏴아

우악스럽게 쏟아진다

 

 

무더위 땡볕을

잘도 견디었다 했더니 드디어

깨끗이 청소를 한다

 

 

아스팔트 주차장에

철철 씻겨 내려간다

신발 젖을세라 까치발 뛴다

 

 

 

 

 

 

운전가르치며

 

 

시동을 틀었다

거미줄 같은 생명을 걸고

 

 

겉으론 평정한 척하지만

가슴이 콩알만 해지고

등골이 흠뻑 젖는다

 

 

앞에서 옆에서

들이 받을 것 같아

온 몸 세포가 빳빳이 선다

 

 

믿어야 한다

자신감을 주어야 한다

내가 그의 손에 달려있듯

그도 내 손에 달려있기에

 

 

 

 

 

 

겨울새

 

 

얼음비 내리는 밤

집 밖에 새들 괜찮으려나

 

 

아침 햇살 반짝이는

빙판이 된 베란다에

참새들 날아와

종종 미끌미끌 맨발로

좋아라 미끄럼탄다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음이다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같이 놀고자

창문을 열었다가

너무 추워 얼른 닫았다

 

 

 

 

풍선껌

 

 

남들처럼 불어보고 싶었다

 

 

단물이 빠질 때까지

꼭꼭 씹은 다음

혀와 입술로 살살 폈다

무조건 불어서도 안 되고

너무 얇아도 두꺼워도 안 된다

후욱 후욱

크게 더 크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그만 퍽,

얼굴에 철떡 달라붙는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알게 되었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

터질 즈음 느낌이 오면

호로록 불러들이면 된다

 

 

 

 

 

 

 

주우며

 

 

'준비 땅!'

허겁지겁 자루에 담는다

 

 

구워먹고 삶아 먹고

실컷 먹고 남을 만치 되었다

그만 주워도 되겠건만

옆 사람 것이 더 많아 보여

지기 싫어 주었다

몹쓸 변명까지 해가면서

 

 

왜 그랬을까

다람쥐도 먹어야 하고

썩어서 거름도 되어야 하는 것을

 

 

영근 밤 앞에서

부끄러워 고개 숙였다

 

 

 

 

 

 

 

계곡

 

 

진흙길 돌길을 지나

골짜기로 한참 들어가면

졸졸 맑은 계곡이 나온다

 

 

누군가의 정열이

땅 속에서 솟아올라

세월이 멈춰 흐르는 곳

햇살과 바람이 만나

놀다 가는 곳

 

 

잠자리 짓궂은 날개 짓에

들풀 꽃 키득거리고

몇몇 송사리

사람 인기척에

물속에 쏘옥 들어간다

 

 

 

 

 

제자리

 

 

오월이 다녀갔나 보다

유월인 걸 보면

회오리바람 치던 가슴엔

이별의 아픔과

만남의 기쁨이 엇갈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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