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된 원고

시집 "샘물" 제 4 장

윤재영 2015. 9. 1. 12:01

 

바닷가에서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 그 뒤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끼욱끼욱 갈매기 소리에

파도가 철썩 몰려와

깨끗이 지우고 간 그 자리에

물새 총 총 총

내 발자국 네 발자국

 

 

나는 지구에서 왔는데

너는 어디서 왔니?

 

 

 

 

 

 

 

 

반딧불이 인생

 

 

해님이 들어가니

반딧불이가 나온다

그에게는 긴긴 일생이나

눈 깜짝할 사이다

나의 삶 또한

누군가에게는 그러하리라

 

 

 

하루이던

억겁이던

지금 이순간은 영원하다

살아있는 한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반짝거려야 한다

정말 그럴까?

 

 

 

칠월 히스테리

 

 

 

물로 불로 말로

윗집, 아랫집, 우리 집

사정없이 내리친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외면하고픈

무감각 통증이나

영그는 애호박 풋고추

즐거움 있기에

붉은 혈색 돌아간다

 

 

따뜻한 정에는

추위도 더위도 없다 했나

집을 잃어도

마음만 얻으면 된다했나

그럴까? 정말 그럴까?

 

 

 

 

 

 

 

낙엽

 

 

누군가 몹시도 그리운 날

 

 

얼마나 기다렸었나

자유로운 이 순간

바삭바삭 훨훨 바람을 탄다

슬픔과 기쁨의 교차

하루 이틀 그러다 빛을 잃겠지

산산이 부서진 그 조각은

무엇이 되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려나

 

 

 

 

 

 

 

곳간

 

 

금싸라기 언어들

바리바리 곳간에 넣어 둔다

미처 소화도 시키기도 전에

쌓이고 또 쌓인다

 

 

철 지난 것들

더 늦기 전에

활짝 문 열어 씻기고 단장해

이름표 달아

세상 구경 시켜 주리라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팔자를 피면 영이 된다고 했나

그냥 좋아서

 

 

 

 

 

알고 싶다

 

 

잘 돌아가다

갑자기 멈추었다

 

 

무엇을 잘못 했나

무엇이 잘못 되었나

누구의 장난인가?

내가 던진 돌인가?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소용이 없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알고 싶다

바람의 시작을

 

 

 

 

 

 

마음대로 하거라

 

 

심술이 난 바람이

사방에서 휘젓는다

 

 

고이 빚은 머리

마구 엉클어뜨리더니

손에 쥔 영수증마저

서슴없이 낚아챈다

잡힐 듯 잡힐 듯

손끝에서 몇 번을 놀리더니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마음대로 하거라

내 손에서 벗어난 것을

 

 

 

 

봄바람

 

 

넓디넓은 하늘 아래

그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든든하다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찾아 주는

향기에 생기 돋는다

 

 

미소 가득 담고 내려다보는

밤하늘 밝은 별 하나

따사한 바람결

반가워 손을 흔든다

그곳에 있어 주어 고마웁다고

 

 

 

 

 

 

소나기

 

 

 

갈팡질팡하는 뇌리에

원망의 소리가

잡아먹을 듯 우르르 쿵쾅

세차게 내리 친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

거품을 뿜어내며

땅을 치고 통곡 한다

 

 

울어라 실컷 울어라

가슴 깊이 맺혔던 응어리

다 풀어 질 때까지

파란하늘 보일 때까지

 

 

 

 

 

 

 

래프팅(Rafting)

 

 

세찬 물살을 타고

넘실넘실 떠내려가며

긴장감이 돌았지만

배가 뒤집힐 정도는 아니었다

 

 

어떤 말을 해도

상처를 받지 않는 너

한 수 더 떠 웃음을 자아내는 너

체면에 걸맞게 엉뚱한

내심을 털어 놓는 너

 

 

부딪기는 대로

흘러내려 가는 동안

우리는 한 삶을 같이 했다

말이 필요 없었다

 

 

 

 

 

 

 

 

"무궁화 꽃피었습니다”

 

 

내가 술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우르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휙 뒤돌아보는 순간

모두 시치미 뚝 뗀다

 

 

무궁화 꽃이…”

무궁화…”

무…”

휴, 겨우 잡았다

 

 

네가 술래다

아무 때나 움직여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욕심을 부리면 잡히게 되어 있다

 

 

잡느냐 잡히느냐, 그 순간

꼴지가 일등이 된다

 

 

 

 

 

 

휴식필요하다

 

 

며칠 방관한 사이

잡초가 무성해

누가 주인인지 구분이 안 된다

 

 

괜한 시비를 걸고 싶고

건드리기만 하면

아옹하고 물어버릴 것 같다

 

 

휴식이 필요하다

한잠 자고 나서 다시 시작하자

꽃과 바람이 놀러 올 수 있게

 

 

 

 

 

 

중매

 

 

짝 없는 언어들을 모아

이리저리 맞추어 본다

 

 

작은 것과 작은 것

큰 것은 큰 것과, 아니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변수란 것이 있다

콩쥐와 왕자도 있고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도 있다

일단 기회를 주면

알아서 할 거다

 

 

그들이 좋다는데

내가 왜 기쁜 걸까

 

 

 

 

 

 

 

어머니

 

 

 

눈발이 날리던 날

뼛속까지 저린 찬 얼음물에

김장 배추를 씻고 계셨다

 

 

적당히 절은 고갱이에

벌건 양념을 돌돌 말아

옷에 닿을 새라

한 입 가득 넣어 주셨다

맛을 보라고 하셨지만

먹으라고 주신 거다

흐뭇한 어머니는

손도 시리지 않으셨다

 

 

그 사랑, 뜨거운 피가 되어

오늘도 가슴에 흐르고 있다

 

 

 

 

 

 

 

 

어느 가을

 

 

 

눈이 내릴 듯 흐린 날

낙엽이 지천이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텅 빈 고독

채울 수 없는

임자 없는 그리움

 

 

오늘 같은 날

날리는 낙엽을 붙들고

물어 보고 싶다

무섭지 않은지

외롭지 않은지

그리고 외치고 싶다

사랑한다고

 

 

 

 

 

 

 

고향정취

 

 

 

단비가 애타게 그리운 날

빛 잃은 친정집 뒤란

기울어져 가는 담벼락 위로

파릇 담쟁이덩굴 세월을 머금고

어눌한 장독대 빈 항아리 옆

보랏빛 하얀빛 청초한 도라지 꽃

옛사랑을 불러온다

 

 

개조된 주방에서

구부정한 노모의

고소한 미역국 냄새가

생선 구워지는 소리와 어울려

꿈속에 그리던 고향의 아침이

도란도란 익어간다

 

 

 

 

보내며

 

 

 

우린 그토록 그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다 못한 소꿉장난을 했지

너는 나, 나는 너

 

 

끝내 머물고 싶었던

다시없을 소중한 스침에

맑은 샘물 되어

주고 또 주고 싶었다

 

 

물결 따라 흘러간 인연

추억의 강에

종이 배 접어

너를 띄워 보낸다

 

 

 

 

 

 

 

우연만나

 

 

 

인연이란 단어로

곱게 포장하여

여기까지 흘러 왔다

보내야 한다는 걸 알았고

진작 그래야 했다

 

 

소중한 추억으로 엮어

가끔 꺼내 보면서

의미를 부여하리라

먼지 되어

허공에 날릴 때까지

 

 

 

 

 

 

 

 

‘임금님 귀당나귀 귀'

 

 

 

간질간질 던진 귀속 말이

선을 타고 전전하다

커다란 눈덩이 되어 되돌아 왔다

무질서한 생각들이

제멋대로 가지를 친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을

 

 

흥분할 것도

탓할 것도 없다

내 입으로 뿌린 거니까

비밀을 지키는 건 고문이다

말할 때는 각오하고

들을 때는 우물에 가서 외칠 거다

 

 

 

 

 

 

 

참견

 

 

 

나무에 얼기설기

붙어 있는 누런 나뭇잎들

한 겨울 다가도록

떨어질 줄 모른다

 

 

생이 다한 이승에

무슨 미련 남아 있어

가고 싶어도 못 가는가

새 싹이 나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하려나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콩나라 팥나라

별 참견을 다하고 있다

 

 

 

 

 

 

 

내 집이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가을이 온통 거리를 덮쳤다

 

 

퇴색되어가는 쓸쓸한 낙엽

제 멋대로 떨어져

정처 없이 나뒹굴다

발길 멈추는 곳

그곳이 바로 내 집이란다

 

 

행복한가 편안한가

어느 만치 흘러 와 있나

하루를 담보로 삶을 버틴다

 

 

흐르는 빗물에 몸을 맡기니

이토록 가벼운 것을

 

 

 

 

 

 

 

그대모를 거다

 

 

 

얼마나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심장이 쿵쿵거리고

바싹바싹 입이마르며

진땀이 나는지

 

 

그대가 느낄 수 없고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어

천만 다행이다

 

 

 

 

 

 

한과韓果

 

 

르르 녹는다, 보드랍게

있는 듯 없는 듯 수줍은 미소로

귀여운 저항을 하며

쫀득쫀득 마지막 순간까지

달콤한 여운을 남긴다

 

 

쪄서 말려서 재워서

색동옷 입혀 가지런히

정성이 가득 담긴 우리의 얼

한이 서린 아리랑고개처럼

정겨운 어머니의 손길

아삭아삭 한 입 한 입 즐긴다

배달의 피를 나눈 우리의 인연을

 

 

 

 

 

 

 

애처롭다

 

 

아직 엄동설한인데

핑크빛 어린 봄 꽃

어찌하다 벌써 피었나

예쁘게 단장했다마는

파르르 떠는 모습이

마냥 애처롭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초여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거다

 

 

눈이 내려

길이 막히지 않았던가

전기가 차단되어

덜덜 떨지 않았던가

고진감래라고 하지만

우선 살고 봐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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