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랑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하다가
어렵게
살아가는
한국
아주머니들에
대한
삶으로
대화가
흘렀다.
말도
안
통하는
미국남편과
살며
어려움을
당하고
견디고
살아가는
사오십
육십대
여인들의
삶이다.
운전도
못하고
꼼짝없이
집에
갖혀
사는
사람,
코가
삐뚤어질
정도로
얻어
맞고
사는
사람,
힘들게
일을
해
한국에
있는
일가
친척
돈을
대
주고
공부를
시켰는데
나중에는
멸시를
당했다는
사람,
이혼을
당해
전전
긍긍
남의
집
일을
해주고
사는
사람,
정신이
이상해
진
사람…
길가에
들판에
피어나는
야생화,
그
아름다움
뒤에는
아픔을
보는
것
같았다.
짖밟히고
모두가
등을
돌린
뒤,
그
추위와
더위를
견디기
위해
가시를
돗게
해야
했다.
상처가
아물기전에
받고
또
받은
상처로
눈물도
메말라
버렸다.
그렇지만
한
떨기의
야생화로
피어
그
생을
다하고
있다.
내
딸자식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진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하늘에서
보기에
기특하실거다.
대학때 번역판,
‘진흙탕에서’라는
책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었다.
진정한
큰
사랑이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
내용이다.
어느
한
수녀님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창녀촌에
가정부로
들어가
그녀들의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며
그들과
삶을
함께
하며
사랑의
손길로
보듬어
주며
하나하나
그녀들에게
새
삶을
찾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얼마나
사랑이
커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느
스승과
제자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저
쪽
구석에서
몇몇
고아들이
손님이
음식을
다
먹고
나가면
달려와
남은
음식을
먹어치우는
것이다.
이
것을
보고
제자가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그러자
스승이
제자를
나무란다.
아이들을
동정을
하는
제자가
더
불쌍하다고
했다.
스승은
그
아이들이
다른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아이들은
행복을
느낄
수
있으므로
동정하지
말라고
했다.
강하게
자란
이
아이들이
나중에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행복의
잣대와
기쁨의
잣대는
각자
다
틀릴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으로
누구나
다
지고
가야 하는
짊이
있다.
이
짊을
어떻게
하는가는
우리의
몫이다.
마치
나뭇잎이
어떤
것은
꼭대기에
어떤
것은
아래에
각자
위치가
있는
것처럼.
그것은
존재하기에
생기는
필연인
것
같다.
그
와중
속에서도,
각자의
위치가
있는
나뭇잎들
멀리서
바라보면
보기
좋은
한
그루의
나무가
될
것이다.
세상
모든
인간이
조물주의
사랑을
받고
태어
났으며
모두가
축복을
받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아픔과
고통은
사람의
탓이지
하늘의
탓이
아니다.
우리가
아프면
그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조물주는
안타까와 마음이
아프실
거다.
누가
잘살고
못살고
하는
판단을
인간의
눈으로
어떻게
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각자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일테니까.
행복은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
있는
것
일테니까.
선과
악의
갈등에
내
코가
석
자인 나,
눈과
귀가
아직
트이지
못한
나,
감히
누구에게
어떻게
살고
어떻게
하라고
할
처지가
못된다.
하지만
아픔과
고통을
느끼고
있는
모든
이에게,
그리고
삶에
목이
말라하는
모든
이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닿아,
놓아
줄
것은
놓아
주고,
잊을
것은
잊고,
버릴
것은
버리어,
자신이
만들어
놓은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기쁨을
맛보게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2005년
10월
22일
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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