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일기 에세이

외할머니와의 약속

윤재영 2006. 11. 10. 16:56

외할머니와의 약속

 

 

, 그러니까 낙엽이 떨어지던 이맘때였다. 시골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례식까지 치루고 벌써 몇일 되었다고 한다. “ 이제 연락하는 거야?” 하며 섭섭해 했지만  마음은 담담했다. 순간에 터뜨려야 눈물이 아니었다. 승화된 슬픔이었다. 아니,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 대학 시절 였다. 가끔 할머니댁에 놀러 할머니께 옛날이야기 책을 읽어 드리며 하룻밤 자고 오곤 했었다.  옛날에 옛날에…… 모가지가 없는 사람이 목이 없은 목발을 쥐고……”하면서 읽어 드리면 할머니는 배를 잡고 웃으시며  아하하면서 장단을 맞추어 주시곤 했다.

 

하루는 할머니가  재영아, 이담에 사는 곳에 가서 할머니가 밥도 해주고 청소도 주고 그럴께, 우리 같이 살자하시는 것이다.  , 할머니, 그렇게 해요.” 하고 대답은 했으나 내심 무척 놀랐다. 할머니가 멀리 떠나고 싶어 하시는 줄을 꿈에 생각 못했었다. 못할 어떤 갈등이 있으신 것이 틀림 없었다. 사실, 할머니하고 둘이만 같이 사는 것은 싫었다. 하지만 실망을 시켜드리고 싶지 않아 약속을 하기는 했었다.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 돌아 올때, 할머니는 언제나 버스타는데까지는 바래다 주셨다. 오백미터의 거리밖에 안되지만 도랑 건너 논뚝을 지나 돌길을 걸어 나와야 했다. 혼자 있다고 나오지 마시라고 했지만 할머니가 하신다하면 아무도 할머니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몸뻬바지 주머니에서  꿍쳐둔 쌈짓돈을 꺼내 손에 쥐어 주시곤 했다. 버스를 타고,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드시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때부터 이별을 준비한 같다.

 

할머니 당신은 교육은 받으셨지만, 몰래 쌀을 퍼다 팔아 교육을 시키실 정도로 마음이 트이시고, 옳고 그른 것이 정확하신 분이셨다. 외할아버지가 육이오 전쟁 돌아가신 , 할머니는 삼십에 두남매를 두고 평생을 혼자 사셨다. 그러했기에 강하실 밖에 없었던 것같다. 아무리 그래도 누가 뭐래도 할머니는 내게 다정한 할머니셨고 나를 무척 귀여워 주셨다

 

마지막이 되었던 , 여름, 할머니댁에 갔을 ,  할머니는 담벼락 옆에 외삼촌이 만들어 주신 의자에 쓸쓸히 혼자 앉아 계셨었다.  년에 만날까 말까하는 손녀 딸을 기다리고 계셨을까?  할머니 미국에 오셔야지요.” 말을 했다. “이제는 몸이 아파  아무데도 못가.” 하시며 거절하셨지만, 얼굴에 붉은 화색이 도는 것이 역력했다. “재영아, 같이 살자하고 말하셨을 희망의 화색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와 하룻밤 같이 지새지 못하는 자신이 야속했다. 지갑에서 있는 돈을 털어 할머니 손에 쥐어 드렸다. “이걸, ?” 하시면서 얼른 받아 주머니에 집어 넣으시는 것이 예전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여름에 다시 찾아 뵐께요.”하고 절을 올렸다. “ 여름까지 내가 있을까?” 하고 말씀하셨다. 사실, 말은 매번 만나 적마다 하시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무슨 그런말씀을 하세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셔야지요하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번에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뼈만 앙상이 남아 거동도 못하시는 할머니를 보고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없었다. 아픈사람도 아픈사람이지만 아픈 사람 수발 들어야 하는  외숙모님은 얼마나 힘드실 건가. 이런 상황에서 할머니는 아프다는 소리 제대로 하지도 못하시고, 기나긴 하루를 고독과 외로움과 기다림으로 보내시는 할머니의 고통은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거다. 

 

할머니…...” 오늘 따라 할머니 생각이 더욱 난다. 하지만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을 거다. 할머니는 이세상 육체적 고난과 고통에서 해방 되셨을 테니까. 쌓이고 쌓인 여인의 한에서 자유가 되셨을 테니까. 할머니 언제라도 내가 사는 곳에 오실수 있을 테니가. 세상 곳곳 다녀보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다니실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제 할머니와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해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될테니까.

 

떨어지는 낙엽이 핑그르르 돌다 사알랑 눈짓 보낸다.

 

2006 11 10

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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