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2007
오늘의 일기: 무슨 소리?
고요하다. 아니, 시끄럽다. 냉장고 “위잉,” 시계 “똑딱,” 귓속 “띠잉,” 잘들 한다. 지칠 줄 모르는 내용 없는 소리들, 궁시렁거리는 사이, 어느새 나도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버렸다. 허와 실이 주체성을 잃고 시간과 벽이 무너지면서, 나란 존재는 잔잔히 흩어져 공간 속에 흡수되어 버린다. 여기가 어딘가? 어디에 와 있나?
“탁!”
“깜짝, 무슨 소리?” 심장이 덜컹했다. 게슴츠레 졸던 강아지 벌떡 일어나 귀를 세우듯, 뇌 세포에 신경들 화들짝 놀라 무장을 하고 진상조사에 나선다.
“아하,” 그건 멍청한 새가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갈고 닦은 경험에 의해 호언장담할 수 있다, 새가 베란다에 있는 모이를 먹고 배가 띵띵해지자, 눈에 보이는 없어서 그랬을 거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된다. 배가 띵띵하면 바닥에 떨어져야지 창문에 왜 몸을 던지냐? 배가 띵띵해서가 아니라, 날 살려라 도망치느라 한 치 앞을 못 보았을 거다. 그 게 더 말이 된다. 다시 말해, 베란다에 있는 모이를 먹고 있는데, 자신보다 힘센 넘이 와서 쪼아대니까, 엉겁결에 도망치느라 앞뒤도 못 보았을 거다. 그래서 부딪친 거다. 맞다. 말이 된다. 그렇게 결론 짓자. 이의가 없을 것을 전제로 하고 계속 진행한다.
날아다니는 새들이 늘 평화로와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도 가혹할 만치 엄격한 위아래가 있다. 어떤 넘이 먼저 먹고 있는데, 힘센 넘이 날아오면 약한 넘 자리를 비워준다. 어쩌다 머리 깃 세우고 반항하면, 쪼아대고 퍼덕퍼덕 짹짹, 피 터지는 쟁탈전이 벌어지다, 결국 약한 넘 포기하면서 조용해진다. 그렇게 순위가 정해져, 힘센 넘이 먹고 있으면 약한 넘 저만치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 패거리가 먹고 가면 다른 패거리가 와 먹는다. 이런 질서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리라. 누군가의 쓰라린 아픔과 고통이 있?珦? 거다.
“후후,” 즈그들이 아무리 그래 보았자, 나한텐 꼼짝 못한다.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눈 깜짝할 새 다들 사라져버리더라. 가까이는커녕 멀리서 구경만 하겠다는데도 그렇다. 도대체 그들과는 말이 안 통한다. 처음엔 방해한 것 같아 미안했지만, 나중엔 약오르더라. "내가 잡아먹을 사람같이라도 생겼냐?"
아무리 예쁘면 뭐하노? 가까이 보지도 못하게 하는데. 화초들이야 키우는 맛이라도있다지만, 이넘의 새들은 남는 게 없다. 그런 넘들한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빈 그릇 채워주는 남편은 또 뭐꼬? 흠, 그러고 보니 그들 사이가 수상적다. 나 모르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거 아냐? "그만, 그만!” 잘 나가다가 내가 왜 이러지? 화살이 삐뚜로 나가고 있잖아. "윤자 재자 영자, 너 질투하냐?" "식식, 그래 질투한다." 나, 새들에게 감정있다. 잘 놀다가도 내가 낄라치면 다들 가버리는 너희들, 한 두번도 아니고, 때마다 거절당하는 이 심정을 너희들이 알기나 하냐?
그래, 미안하다. 나 고백한다. 이건 진심이야. 사실 난 그대들이 좋고, 그대들과 함께 놀고 싶고, 그대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거라고.
친구가 사 준 감, 한 자리에서 다섯 개 먹었다. 넘 맛있었다.
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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