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일기 에세이

어머니 집

윤재영 2009. 6. 26. 20:40

 

PC 방을 찾아 주변을 뱅뱅 돌다가 이제사 찾았다

할말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시작할 지

우선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부터 확인을 하고

수요일 인천 공항에 도착해 공항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삼 년 전만해도 어머니댁에 도착하려면 밤 열시가 넘어야 했는데

여덟시 반에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에 다다르자

나이드신 어머님이 혼자 나와 눈이 빠지게 기다리시는 모습을 보자

우리 어머니 평생 늙지 않으시지만 다른 사람이 보면

노인네 할머니시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한달 전만해도 허리가 아프셔 일어나지도

못하신다더니 버스를 타고 나오신 것이 분명하다.

내 혼자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 훨씬 마음이 가벼우련만

어머니와 난 붙들고 눈물을 훔치며 짐보따리를 끌고 택시를 향했다

예쁜 아가씨 혼자 택시를 타는 것과 두 아줌마와 한 가방 당 한 사람 몫을 하는

가방이 세개가 딸린 손님, 내가 생각해도 기사 아저씨 재수 없다 하실 것 같다

돈을 두배로 줄테니 저희 좀 실어 주세요

돈 아끼려고 버스타고 나오신 어머니 앞에서, 난 서슴치 않고 돈을 두배로 드리겠다고 했다

기사 아저씨는 무거운 짐을 실어 주셨다. 어머니는 엄청 좋으신가 보다

잔 돈도 받지 않고 고맙수 하시며 돈을 내셨다

 

아버지도 그대로셨다. 귀가 어두우셔 이제는 소리를 질러도 듣지 못하신다

어머니는 연실 통역해 주셨다. 어머니가 말하시는 것은 놀랍게도 잘 들으신다

어머니 아버지 절 받으세요, 또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자식들 때문에 노심초사하시는 부모님, 나 또한 우리 아이때문에 노심초사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눈물이 다 말해 주었다

아버지 애들 잘있냐 남편 잘있냐 고생 많았다 하시고는 방으로 건너가시고

어머니와 둘이 남았다

물건을 사느라고 애를 썼 건만 꺼내 놓고 보니 초라하다

나 왜 어머니한테 번뜻한 선물하나 못해드리는 걸까?

 

어느 듯 자정이 되고 어머니가 빨리 들어가 자라도 하신다

내 방을 치워 놓느라고 치워 놓으셨다. 모기장도 쳐 놓으시고

탁자 램프도 사 놓으시고 깨끗이 침대 시트도 깨끗이 빨아 준비해 놓으셨다

예전엔 같이 자자 하시더니만 어째 혼자 자라고 하시는 걸까

엄마랑 같이 잘께

기다리기라도 하셨는지 그래 하시면 얼른 어머니 방에 모기장을 치셨다

무슨 말을 했는 지 모르시만 새벽 두 시가 되도록 울다 웃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이가 들면 한 말 또하고 또하고 그러는 이유를 알겠다

말을 해 놓고 무슨 말을 했는 지 잊어 버리니까 또 하는 거다

나도 이제 그 초창기 증세가 나타나는 것 같다

 

잊어 버리는 것이 다 섭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산고를 겪을 때 아팠던 고통을 다 잊어 버렸듯

자식이 힘들게 한 것도 다 잊어 버리는 가 보다

 

어머니 집

화장실 냄새에 익숙해 지고

날아다니는 파리마저 밉지 않다.

제비가 날아 와 집을 짖고 알을 품고 들어 앉아 있다

꽃밭에 봉숭아 백일홍 햇볕을 찾아 길게 길게 목을 뽑았다

어머니 아침에 된장국 잡채해 주셨다

작년에 담근 김치도 꺼내 주셨다. 너무 맛있다

밥도 겨우하시고 설거지도 힘이 드셔셔 쉬었다가 하시는 어머니

이번엔 내가 음식해 드린다고 몇가지 적어 가져왔건만

난 또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고 있다

사십이 되어도 오십이 되어도 난 어머니의 어린 딸이다

눈물이 자꾸나오려고 한다 눈물샘을 막아버릴까보다

 

슬플때 슬퍼하자

지금은 기뻐할 때 감사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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