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일기 에세이

잃어버린 배추

윤재영 2013. 2. 13. 04:11

 

잃어버린 배추

윤재영

     동서양이 만나 결혼 생활 거의 30여 년이 되어가건만 내가 소시지 베이컨 구이 냄새에 익숙하지 못하듯 남편은 김치 냄새에 적응하지 못하고 민감하다. 무슨 잘못이라도 한 듯 김치는 냉장고 안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찬밥신세를 지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싸이 말춤 덕분인지 남편이 김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쥐구멍에도 볕 뜰 날 있다고 그동안 참고 견딘 끝에 우리 김치가 한세상 만났다.

    김치 담그는 것이 처음 컴퓨터 배우는 사람처럼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한 번 담그고 나니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니 재미가 들렸다. 아줌마의 대열에 껴서 김치를 못 담근다는 것이 부끄럽기조차 했는데 이제 나도 자격이 된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벼르다 벼르다 애틀랜타에 장 보러 갈 기회가 생겼다. 배추를 한두 폭만 해도 한 달을 먹을 텐데 마침 세일 해 한 박스가 그 값이었다. 고양이가 생선을 보고 그냥 지나칠 없듯 앞뒤 생각도 하고 무슨 복권이라도 당첨된 신이 나서 사왔다.

            세상이 좋으니 배추도 좋은 건지, 쪼개기도 벅찰 만큼 속이 차있으니 배추가 배추 같지 않다. 그날부터 온통 배추 판이 벌어졌다. 김치 담그고, 끓이고, 먹고, 덕분에 만두도 먹었다. 하지만 매일 김치만 먹고 배춧국만 먹을 없듯 그것도 한계가 왔다. 주가 지나면서 싱싱했던 배추가 누렇게 빛을 잃어갔다. 없이 남은 폭을 신문지에 꼭꼭 싸서 하나는 냉장고에 하나는 차고에 다른 하나는 어디에 잘 놓아두었다.

          드디어 김치 담글 일이 생겼다. 다음 모임에 반찬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그러나 어떻게 것인지 한 폭이 어디로 갔다. 다리가 달린 것도 아니고 누가 치울 리도 없고 것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무리 뒤져도 없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땅에 묻어놓고는 어디다 숨겼는지 모른다고 하더니만 꼴이 되었다. 없이 폭을 절였다. 온종일 법석을 떨며 담갔지만 모임에 가져갈 병만 나왔다.

         어디에다 놓았을까? 김치를 먹지도 않는 남편한테 물어보았자 본전도 찾지 못할 테니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어느 구석에서 주인을 애타게 찾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 안토니오 성인에게 기도하면 된다고 하지만 욕심부리다 그렇게 된 것을 두고 기도하기에는 낯뜨겁다. 그건 그렇고 혹시, 개인 것을 개로 착각하는 아닌가? 그래,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이 편하면야 그렇다고 하자.

         며칠이 지났다. 우연히 거실에 화분대 아래에 비닐봉지가 있어서 누가 쓰레기를 저기다 버렸나 하고 보았더니 배추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이곳에 두었는지 그때의 심리 상태가 전혀 이해가 간다. 그건 그렇고 매일 지나다니는 곳인데 눈에 띄지 않았는지 그것도 희한하다.

        하여튼 아주 기쁘다. 정말 기쁘다. 디즈니 월드에 놀러 갔다가 깜짝할 잃어버렸던 아이를 찾은 것만큼 기쁘다. 누구는 잃어버린 마리의 양을 찾아 기쁘지만 나는 배추를 찾아 기쁘다. 사실, 내게 치매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은근히 걱정했었다.

        혹 찾을까 하는 미련 때문이었을까? 줌의 소금과 양념을 남겨 놓았었다. 낭비 해서 좋고, 쉽게 담글 있어 좋고, 얼쑤얼쑤 이래저래 그저 좋다. , 내가 너무 소란을 피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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