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일기 에세이

수필-겨울 물난리

윤재영 2013. 12. 6. 09:26

겨울 물난리


   윤재영


큰일 났어.” 토요일 새벽, 남편의 인기척에 잠을 깼다. 보통 일로 잠을 깨울 사람이 아닌데 무슨 일이 나기는 났구나 싶었다. 그의 얼굴에서 심각도를 읽는 동안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며 쇼크에 대비했다. 도둑이 것도 아니고 불이 것도 아니고 아이들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니라면 무엇일까. 아래층에 있는 보일러가 바닥이 한강 수란다.

물을 흡수한 카펫은 철퍼덕거렸고 주방 비닐 장판 위에는 언제 죽은 모를 벌레들과 단합된 먼지들의 원조가 동동 떠올라 실체를 드러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지인들로부터 바닥에 물이 찼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이후 어떻게 처리했다는 말은 들었다. 놀란 남편은 자그마한 스펀지 하나를 들고 불빛에 얼어붙은 사슴처럼 있었다.

엎친 덮친다고 하필이면 이때에 일이 터지는지. 주말에 이틀 동안 애틀랜타에 다녀와야 하고 다음다음 날부터 사흘 동안은 어느 회사에서 통역하기로 되어 있다. 전에 계획된 일이라 물이 아니라 물의 할아버지가 와도 취소할 없는 일이었다.

일단 바지를 걷어붙이고 무서운 흡수력을 가지 매직 타올로 쓰레받기에 물을 쓸어 담아 통을 채웠다. 두어 시간 정신없이 나르고 나니 대충 끝이 잡혔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 장마 때면 낮은 지역에 있는 우리 집은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대들보까지 물이 차오르는 것은 예사고 시시때때로 오빠와 부엌에서 고이는 물을 바가지로 퍼내야 했다. 지긋지긋하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걱정이 아직도 뇌리에 아른거린다. 살아서 겪어야 물난리는 그때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삶이란 장담할 없는가 보다.

물탱크로 들어가는 파이프 잠금이 고장이 났는지 계속 물이 흘러나왔다. 없이 밖으로 나가 연결된 수도관을 잠갔다. 아침에 잠시 물을 틀어 남편은 찬물에 샤워하고 하루 물을 통이란 통에 받아 놓았다. 저녁에도 잠시 물을 틀어 설거지하고 다시 잠갔다.

월요일 아침 보일러를 사러 갔더니 S씨를 소개해 주었다. 화요일 오후 남편이 집에 있을 S씨가 다녀갔는데 안에는 있는 위치에 보일러를 설치하는 것은 규정에 어긋나므로 차고에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가스로 하면 파이프 연결하는 비용은 비싸지만, 전기보일러는 손쉽게 있을 뿐만 아니라 전기 회사에서 공짜로 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본래 생각했던 것보다 배나 되었다. 미심쩍었지만 대안이 없었다.

수요일, 찬물이라도 좋으니 계속 나오면 좋을 같았다. 업체에서 바닥을 말리는데도 잠시 물을 때문인지 계속 물이 샜다. 급한 불을 꺼야겠기에 사람을 불러 보일러와 연결된 파이프를 자르고 물을 막았다. 목요일, 일째 되는 , 한계가 왔다. 주말에 영하로 내려간다고 하는데 뜨거운 없이는 같았다. 보일러를 설치하기로 금요일 아침 마침 보험회사에서 나온 사람으로부터 S씨가 것이 근거가 없으며 보일러를 설치해 주는 곳이 다른 곳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장 취소하고 T 회사에 문의했다. 가격도 저렴한데다 시간 내에 와서 위치에 설치해 주겠다는 거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올 즈음 남편이 퇴근했다. 취소했다는 것만 알고 있는 그는 호텔로 가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써프라이즈!

이번 물난리를 통해 물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고 감사함도 알게 되었다. 마실 물도 부족한 어느 아프리카 지역에 사람들 그리고 홍수에 집도 잃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당시에는 황당했지만 지나 놓고 보니 감사하게도 적시적소에 일이 해결되었다. 바닥을 들어낸 아래층에는 흐트러진 책들과 가구들로 엉망이다. 하지만 마음은 홀가분하다. 이번 기회에 퀘퀘 묵었던 먼지를 털어내고 짐스러웠던 과거를 깨끗하게 정리할 생각이다.




11월 16일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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