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일기 에세이

스커퍼넝즈 포도--수필

윤재영 2013. 10. 17. 01:48

스커퍼넝즈 포도


      포도의 계절,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아침저녁으로 한풀 꺾일 즈음 미국 남부에 근거지를 투박한 스커퍼넝즈 포도 (Scuppernongs 또는 Scuplin) 슈퍼에 나온다. 덥고 습기가 많은 지역에서 자라는 포도는 1524 로우스 캐롤라이나 스커퍼넝즈 강가를 따라 탐험하던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 하얀 포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후 재배되면서 강의 이름을 따서 스커퍼넝즈 포도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포도송이와 달리 낱개로 따는데 알이 왕방울만 파운드라고 해도 된다. 껍데기가 워낙에 두껍고 속 알이 작은데다 씨앗의 크기는 다른 것보다 두어 배나 커서 많이 먹은 같아도 배는 부르다. 남부 사람들이 특히 선호하는데 엽록소가 많아 대장에 좋고 그리고 전립선에 좋은 항암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처음에 청색이었다가 익으면 브라운색으로 변하는데 설익은 것일수록 색이 청초하고 투명하다. 청포도를 생각하고 탱탱한 것을 잘못 깨물었다가는 너무 시어서 큰일 난다. 익은 것일수록 누렇고 볼품이 없어지지만 터뜨렸을 껍데기와 사이에서 나오는 주스는 크기와 비교해 감질나지만 방울에 농축된 새콤달콤한 맛은 마치 세상 모든 포도의 좋은 맛을 합쳐 놓은 같다. 누군가 표현한 것처럼 아주 맛있어 동동 구르다 넘어질 정도다.

       맛도 맛이지만 스커퍼넝즈 포도는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어느 여름날 학생 하나가 엄마가 주셨다며 갤런 비닐백에 하나 가득 담은 것을 갖다 주었다. 별생각 없이 맛을 보았다가 그만 자리에서 남기고 먹어 버렸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 알았다. 들은 바로는 학생 엄마는 앨라배마와 애틀랜타 사이 어느 숲에서 야생 포도를 따느라 땡볕에 그을리고 가시에 긁히고 손이 부르텄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한개 한개 땄을 그녀의 마음을 생각하고 감격하지 않을 없었다.    

       그녀와 인연은 그녀의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공부를 봐달라고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아이가 대학 때까지 계속되었다. 거리도 멀고 일을 하느라 피곤하고 귀찮기도 하련마는 거의 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일주일에 두어 아이를 데리고 오셨다. 그뿐만 아니라 친정어머니가 음식을 챙겨주시듯 직접 만든 명절 음식 그리고 감과 철철이 정성스럽게 보내 주셨다. 특히나 여름에 스커퍼넝즈 포도는 빼놓을 없다.  

       그녀는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교회는 물론 한글 학교에서 행사에도 마다치 않고 풍성하게 물심양면으로 베풀었다. 아이가 대학 결정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그것이 그녀와 마지막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어느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장례식 함께 했던 사람은 모두 슬피 울었다. 곱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하늘나라에 가고 그곳에 없었다.

        뜨거운 습기와 태양열 아래 누렇게 영근 포도에는 힘든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보듬고 일어선 그녀의 얼이 담겨있다. 달콤한 삶의 향기를 곳곳에 나누어 주고 바람처럼 떠나버린 사람. 겉은 꾸밈이 없고 투박했지만, 마음은 순수하고 바다처럼 넓었던 사람. 올해도 주저 없이 파운드를 실컷 먹으며 그녀와 회포를 풀었다.

        몇천 하늘이 심어 놓고 자연이 가꾸어 원주민과 동물들의 양식이 되었을 스커퍼넝즈 포도는 앨라배마 한적한 곳에 사는 강원도 토박이인 나에게까지 우연한 인연으로 다가와 변치 않는 사랑의 고리로 이어지고 있는가 보다.




      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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