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일기 에세이

수필--애틀랜타 공항에서

윤재영 2014. 9. 13. 02:31

애틀랜타 공항에서


윤재영


애틀랜타 공항에서

 

윤재영

 

인천 공항에서 출발한 13시간 만에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오전 시다. 버밍햄에서 애틀랜타까지는 시간 반이 걸린다남편이 아무리 빨리 데리러 온다고 하더라도 여섯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무거운 가방 개를 실은 카트를 끌고 세관을 통과해 나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공항은 썰렁했다. 짐을 맡기고 어디라도 다녀오고 싶었지만 뉴욕 무역빌딩 테러 사건 이후로 수화물 보관 장소가 없어졌다고 했다. 화장실에 때도 산더미 같은 짐들을 끌고 가야 했다. 마일리지로 업그레이드된 프레스티지석에서 흠숭한 대접을 받으며 편안하게 다리 뻗고 왔건만 한순간에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구경거리 상점이라고는 편의점 하나와 스타벅스가 있다. 시금치 말은 빵과 주스와 커피를 사서 아침으로 먹었다.

웬일인가. 기내 좌석에서 탔던 중년 신사가 눈에 띄었다. 이륙하기 승무원이 와서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인사를 하자 다짜고짜 춥다고 실내 온도를 높여 달라고 했던 사람이다. 혼자만 비행기를 타나? 승무원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갔다. 요구하는 사람이나 들어준다고 사람이나 똑같다. 온도를 올리면 더워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유별나게 까다로운 분이라 생각했는데 밖에 나오니 별수 없다. 무안해 할까 얼른 고개를 돌렸다.

                시간을 보내는 데는 쓰는 것이 최고다. 수첩 하나로도 유수처럼 보낼 있을 텐데 하필 이때 잃어 버리고 없다니 얄궂다. 탑승하기 공중전화 앞에서 전화번호를 찾느라고 꺼낸 것이 마지막이었다. 돈지갑 잃어버린 것보다는 낫지만 새해부터 바늘에 가듯 함께했는데 가방이 같다. 있을 때는 몰라도 없어져 보면 소중함을 알게 된다. 잡힐 것은 없는지, 휘갈겨 난도질해 놓은 언어들이 마음에 걸린다. 고맙게도 찾았다고 연락을 받았다. 개인의 부주의로 아까운 인력과 특별배송비까지 들게 하다니 대단한 수첩이다.

잠이 솔솔 왔다. 짐에 기대어 달콤하게 잤다. 한참 같은데 겨우 시간 지났다. 에어컨이 얼마나 빵빵하게 돌아가는지 스웨터를 끼어 입었는데도 온몸이 얼어버릴 같다. 냉방비가 엄청나게 나올 텐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친정부모님이 계신 춘천에서 삼십 도를 넘나드는 한여름 날씨에 익숙해졌던 터라 세포들이 놀래 난리가 났다. 오냐오냐, 밖으로 나가 몸을 녹이자.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무거운 보따리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은 혼자 같다. 사람이 앉아야 의자를 혼자 차지하고 앉았다. 마침 건너편에 하이힐을 신은 멋진 아가씨가 물건을 떨어뜨린 것도 모르고 재빠른 걸음으로 가방을 끌고 가고 있었다. 한참을 가는데도 주위에서 아무도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과부의 마음은 과부가 안다고 잃어버리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벌떡 일어나 그녀를 향해 뛰어가며 실례합니다 외치며 시선을 끌어 알려 주었다. 그녀가 손짓하는데 고맙다고 하는 같아 나도 괜찮다고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길을 되돌아가 물건을 집어 들고 들여다보더니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니까 그건 누군가 버린 쓰레기였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민망해서 있지 못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지루할 것만 같았던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흘러갔다. 거슬러 올라가려면 힘들어도 가는 대로 타고 가면 쉬이 간다. 빨리 가고 늦게 가고 싫고 좋은 것은 생각하기 나름인 같다. 남편은 일을 마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왔다고 한다. 미처 버리지 못한 마시다 남은 커피 개가 손에 들려 있었다. 어떻게 알고 자기 것까지 샀느냐고 남편이 감격했다. 이런,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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