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일기 에세이

가을에 부쳐

윤재영 2014. 9. 25. 06:21


가을에 부쳐

 

윤재영

 

인생의 항로에서 의지대로 되는 것이 있고 환경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시작하여 가지치기가 시작된다. 스스로 쳐야 하는 것이 있고 자연에 의해 또는 타의에 의해 쳐지는 것도 있다. 그러면서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살았다고 있을까?

삶에 때가 묻어 양파처럼 겹겹이 쌓인 거짓 자아를 하나하나 벗길 적마다 각고의 고통을 겪는다. 벗겨내면 ‘아하’하고 한숨을 돌리지만 안에 다른 딱딱한 것이 자리하고 있다. 단단하면 할수록 깨져야 하는 아픔은 크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은 집착, 무지, 자만, 이였다는 것을 알아차리며 피식 웃는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알아차리기까지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는 아프기만 하다. 힘들면 힘들었던 만큼 깨어나는 기쁨도 크다.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고 아기 피부처럼 보드라운 살결이 드러나도록 담석 같은 이고 ego 부서져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려야 한다. 그날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아파하고 기뻐하고 넘어지고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며 수행할 뿐이다

지금까지 고개를 넘었을까? 풍파의 강을 건너 거친 산을 넘었으니 여기서 머물면 될까?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오는 자연의 이치를 거슬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야무진 생각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를 넘어야 할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오라고 자연이 부르면 하던 툴툴 털고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있을까? 보고픈 사람이 있고 채우지 못한 그리움이 남아 있기에 아직은 아니라고 도리질하고 아직 떼어줄 살점이 있다고 고상한 변명을 하고 고개를 조아리고 매달리며 삶과 애절한 흥정을 하고 있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 이제 미국에서 햇수가 한국에서 것보다 많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접목된 삶의 수판에 때만 되면 지난 추억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잊혔던, 잊고 싶었던, 잊어서는 안 될 기억들이 가을 단풍 되어 석양에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낙엽 되어 그냥 묻힐 수도 있는 흩어진 추억의 조각을 주어 맞추어본다. 당시에는 몰랐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오묘하게 엮어져 퍼즐처럼 들어가 맞는다.

거쳐온 과거가 분명 있었기에 여기까지 내려왔다. 언젠간 사랑하는 모든 것과 이별을 해야 하기에 함께 살아 것이 애틋해서라도 아무렇게나 쌓아 놓았던 정리 필름을 하나씩 꺼내 다듬어 주고 적당한 이름을 붙여 주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의 이름을 돌에 새기고 나무에 새기고 자물쇠로 잠가 놓고 싶듯 지난 삶의 조각들을 글로 묶어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다

뒤돌아보니 혼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살아오며 아찔했던 순간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힘겹다 하지 않고 내민 손을 잡아 주었고 무한한 공간을 사과나무처럼 아낌없이 묵묵히 주었다. 또한 누구에겐가 그러한 존재가 되어 주고 싶다. 스쳐 모든 인연에 눈물겹도록 감사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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