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돈 주세요 (일 달라는 일 천 원
정도)
큰아이가 (만 15살) 아침을 먹으며 “엄마, 돈 주세요.” 한다. “무슨 돈?” “학교에서 가져 오래요.” “무슨 일로?” “연극보러 간대요.” “언제 누구하고?” “영어 시간에요.” “무었을 보는데?” "버스 타고 세잌스피어..." 대충 알겠다. 세잌스피어 연극이 가을 년중행사로 열리는데 영어 수업 과정으로 학교에서 버스를 대절해 구경가는 가 보다.
꼭 이렇게 심문을 해야 되는가? 왜 이래서 저래서 돈이 필요하다고 한번에 말을 못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달래는 대로 주어도 되겠지만 알 것은 알고 주어야 하지 않는
가. 요즘들어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많아지고 성적도 떨어지고 하여서 혹시나 잘못된 길로
빠질까봐 은근이 걱정을 하고 있었던 터라 더욱 확실하게 알고 싶었나 보다. 체크를 꺼내 써 주려고
하자 체크는 안되고 현찰로 달라고 한다.
지갑을 열자 지갑안에 이달라 밖에
없었다. 분명 엊그제 백달라를 넣어
놓았었다. 적어도 삼십 달라 정도는 있을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 작은아이가 친구들과 극장에 간다고 내 가방에서 돈을 꺼내갔었다. 십달라 꺼냈다고 보여 주며 돈을
보여 주었지만 내 지갑에서 직접 돈을 꺼내 간것이 이번 처음이였다. 마음에 걸렸었지만 서로 바쁜 상황이였기
때문에 다음에 조심시키기로 하고 그냥 지나갔었다.
큰아이가 “엄마 동생이 어제 돈을 더 꺼내 간것 아니예요?” 하는 것이다. 나도 속으로 “그랬을까?”하고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심을 한 다는 자체가 아이한테 미안했다. 그럴리 없다. 동생을 의심하는 큰아이를 나무라며 동생이 십달라를 꺼내 갔다면 십달라를 꺼내 간 것으로 믿는 다고 했다. 그리도 상황이 바뀌어 동생이 형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면 똑 같이 그렇게 말 했을 것이라고 하며 아이들에 대한 나의 신뢰를
확신시켰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어려서 부터 강조해서 왔었다. 특힌 돈 문제에
관해서는 아이들을 믿어왔다. 이제 아이들이 분별력이 생길 나이가 되었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 엄마한테 혼나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신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돌다리도 두두려보고 지나가라고
했다. 이번기회에 다시 한 번 내것과 네것에 대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겠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자신은 속일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하느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할 때만이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는 것을…. 아, 그러고 보니 난 부끄러운 사람이다. 그렇치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안 가르킬 수 없는 것는 것은
아닌가
10월 17일
윤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