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서로 연락은 없었지만 항상 가까이 있는 것 처럼 느꼈던 자매님이 암으로 돌아가셨다. 서로 연락이 없어도 잘 계시겠지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허전하다. 내 손 꼭 잡아 주셨고, 세상에 사랑과 미소를 뿌리며, 끊기지 않는 정열로 사셨다. 가끔 그 자매님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다 엊그제 너무도 우연히 자매님 아들을 만났다. 먼 곳에 사는데 잠시 들렀다고 했다. 깜짝놀랬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의젓한 사회인이 되어 미소를 짓는데, 마치 돌아가신 자매님을 뵙는 것 같아 기쁜 마음에 손을 꼭잡고 놀 줄 몰랐다.
병중에 계실 때 자매님께 쓴 글을 올린다.
아녜스 자매님께
사랑하는 아녜스 자매님, 자매님이 투병중에 계시다는
말을 전해 듣고도 직접 찾아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번이나 자매님 생각하며 기도중에
자매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자매님의 아낌없이 주는 사랑은 저의 삶에 본보기가 되어 지금 이많큼 클수
있었습니다. 자매님을 그리며 글로나마 주님의 사랑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십여년전 처음 버밍햄에 이사와 조그만 아파트에서
두아이를 낳고 차도 없이 외롭고 힘들어 할때 자매님은 저의 친정어머니와 같았습니다. 언제라도 편히 찾을 수
있었던 푸근한 자매님의 집, 푸짐한 음식해놓고 쉬었다 가라고 하셨지요. 마음속에 있는 고민 다 들어주시고 제 아픔을 어루만져 주셨지요. 걸음마 하는 우리 아이들 안아주 시고 귀여워
해주시며 기뻐하시던 자매님의 밝은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이후 비록 연락은 하지 못하고 살았지만 자매님은
성모님의 손길이 되어 사랑을 베푸신다는 소식은 자주 듣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마음과 같이
깨끗하신 자매님, 때로 자매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 때가 있었을 텐데도 한번도 자매님이 화내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지요. 집 떠난 딸이, 멀리 계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듯 자매님을 생각하며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답니다.
자매님, 생각나세요? 그러니까 자매님을 끝으로 본날이네요. 어는 자매님 저녁초대에서 만나 ,자매님과 저녁을 맛있게
먹고 대화를 나누다 늦은밤이 되었지요. 집에 가야할 시간이 되었는데 밖에는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비 바람이
몰아쳤었지요. 험악한
날씨에 길도 낯설어 무서워서 도저히 혼자 차를 몰고 집에 갈수가 없어 걱정하는데 “요안나
자매님, 내가 집에까지 안내해 줄테니 내뒤를 따라와요.” 하시며 제가
말을 꺼낼사이도 없이 앞장 서셨지요. 자매님 댁까지 가시려면 한참 돌아가야 하는것을 알면서도 저는 너무
겁이나 자매님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방향을 잃은 상태에서 그저 자매님 차 뒤에서 빨간 불빛만 보고 따라갔습니다. 으시시하게
컴컴한 숲속을 지나면서도 마음편히 집까지 왔습니다.
가신다고 반짝반짝 신호를 주실때 깜빡이의 빨간 불은 성모님의 사랑의 불덩이가 되어 제
가슴속에 자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매님 마음속에
성모님의 빛이 환하게 비추시고 제가 받은기쁨의 몇배나 더 큰 기쁨을 받으시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자매님, 아픔속에서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자매님의 용기와 사랑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언젠간 영원한 시간속에서 햇빛 찬란한 맑은
호수가에 앉아,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살찌지 않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예쁜꽃들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낼 날이
있겠지요. 자신의
아픔속에서도 남을 위해 기도를 해주시는 자매님께 저를 맡깁니다. 혹시나 제가 길을 잃어 자매님을 찾지
못하면 자매님이 저를 꼭 찾아 이끌어 주셔야해요.
베푸신 사랑 감사하다는 말로 다 표현못하지만 주님께서는 알고 계시겠지요. 자매님이 만져주신 성모님 따뜻한 손길은 사랑의 씨앗이 되어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것입니다. 자매님, 주님의 은총속에서 성모님과 함께하시며 성모님 사랑 많이 받으세요. 자매님
사랑합니다.
2006년 3월3일
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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