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편견
도인이
아니고
성인이
아닌
이상,
우린
편견속에서
살고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내
자신이,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내
사랑이,
내
나라가
관련되
있는데
있는데,
보통
속세의
중생이,
그
인연을
끊기란
힘들거다.
비록
그렇다고
하지만, 편견이
있다고
알고
있는것과,
편견에
노예가
되어
생각없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를
것
같다.
어린아이
그림과
피카소의
그림의
가치가
다르듯이
말이다.
무조건
지구가
평평하다고
우겨대는
것과,
평평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이
두
경우,
말이
통하고
안통하는
거다.
물론,
어느
한
분야에서
통했다고
다른
분야도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통해서는
안되는
경우도
있을
거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누가
내
글을
읽겠는가
마는
그래도
혹시나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면
내
마음을
알리고
싶다.
분명
밝히고
싶은
것은,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고
있으니
독자도
그렇게
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삶에
기쁨을
주는
작은
깨우침있어
그것을
나눔을
하고
싶은
거다. 관심이
있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독자는
알아서,
골라
입고
먹고,
아니면
버리고
그렇게
할
것으로
믿는다.
겸손이란
말의
의미를
나나름대로
깨닫고,
내게
족쇄를
채워
힘들게
했던
것이
명예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알에서
깨어났다.
숨통이
트이는
거다.
진정한
겸손이란,
나보다
잘난
사람이
없고
나보다
못난
사람이
없다는
거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서
어떻게
생활에
적용하는
가는
평생
나의
숙제이다.
잘보이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다.
나
이런것
엄청
좋아한다.
내게
도움이
하나도
안되는,
내
뒷다리
붙들고
늘어지는
내
편견이다.
하지만
그렇게
부족한
나를
이제
자학하지
않을
거다.
보듬어
주고
기다려
줄거다.
어떠한
깨우침이
올것이라고
믿어줄거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중에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내게
쓰고
싶은
거다.
순간
순간
깨우침을
얻으며,
도튼
사람처럼
자아만족에
빠져보지만,
잠시라도
넋을
놓고
있으면,
다시
막힌다.
날파리
중생이라
어쩔수
없다.
그래서,
정신이
말똥말똥
할
때,
글로
적어
청소를
해야한다.
이렇게
적어놓고
나중에
읽어보며
마음이
혼탁해질
때,
다스리고
싶은
거다.
철자법은
나중에
고치기로
하고
우선
샘물이
마르기
전에
퍼
담아
본다.
우리는 변한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를 거다. 어떤 것은 오래 두고 보아도 좋은 것이 있고, 어떤 것은 그 때는 좋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별로 인 것도 있다. 아니 잘못되었다고 고치는 것도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나의 생각이 변하는 한, 나의 글은 계속 수정되어 나갈 거다.
2006년 3월 8일
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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