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일기 에세이

진품, 명품, 그리고 대량생산 詩

윤재영 2006. 3. 14. 05:12

진품, 명품, 그리고 대량생산

 

 

혼자 떨어져 살다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지 모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은 아닐거다. 앙금을 가라앉히고 맑은 물만 보고 싶은거다

 

아는 것이라고는 인테넷 카페나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통해 눈동냥으로 대충 나대로의 성을 쌓는거다. 얼마전, 시를 쓴다고 시인인가, 시와 산문의 구별도 못하며 글을 놓는 사람은 주제파악을 하라는 내용과, 마구잡이 장사하듯 마구 등단 시켜주는 문학지는 스스로 자제하라는 글들이 나보고 같아 읽으며 가슴 뜨끔했다.

  

, 초등학교 육학년 때부터 일기를 써왔다. 일기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나의 영적 친구이고 나의 삶이었다. 하지만 시는 어느 순간 갑자기 나를 찾아 주었다. 몇년 구약 성서에서 시편을 쓰던 날이다. 소파에 잠시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봄바람이 찾아 살랑거리기에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헤어지기 아쉬어 시로 적은 것이 물고를 터뜨린게되었다. 글맛을 알고 나니, 세상 보이는게 모두 시다. 그렇게 해서 끄적거려 놓은 것도 밑둥이에 곰팡이 쓸만치 만치 쌓여간다.

 

, 시와 산문도 구별 못하며 시라고 썻고, 등단 시켜준다고 시를 몇편 내보라고 추천을 받아 한겨레 문학지에 등단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름을 올려놓았다. 평론가에 의하면 사물을 시적으로 있는 감각을 가졌고 가능성이 있는 글이라고 추천이 되었던 거다. 그것을 계기로 자신도, 등단을 하면서 한마디에 더욱 책임감이 느껴졌고, 배움의 자세를 가지게 된거다. , 그리고 보니 개띠다. 서당개에다 하룻강아지.

 

얼마를 지나니 서당개의 한계를 알게 되었고, 범이 무서운줄 알게 되었다. 범이 나를 혼내서 그런건 아니다. 많은 시를 접하다 보니, 어떤 시가 진품이고 명품이고 대량생산인지 대충 구별 할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된 것 같다. (, 그러고 보니, 모조품도 있다. 모조품의 구별은 분야가 아니므로 언급을 피한다)  그들 셋은 서로 필연으로 연결되어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진품은 개의 귀한 도자기를 구어내기 위해 혼신과 혼열을 만들어 것이고, 명품은 좋은 글이 시집이 되어 팔리는 것이고 대량생산은 같은 사람이 일상생활의 희노애락을 그려 취미로 쓰는 글이라고 하자.

 

누가 뭐라고 지언정, 내게 시는 나의 느낌이고 삶이다. 시를 쓰는 순간에 벌거벗은 모습이다. 그래서 시를 쓰는 사람은 순수한 같다. 시로 돈을 벌지 못한다. 돈을 생각하면 시가 안나온다. 때로 편의 귀한 시를 감상 감탄하며 (자아자찬, 사실 아직 어떤 시가 진품인지 있는 눈이 없다.) 누군가 이런 진품을 만들어 내는 시인을 먹여 살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마음의 만족이 허기를 채울 있다는 경지로 있겠지만 그래도.

 

 

 

 

2006년 3월 13일

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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