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일기 에세이

누군가의 아픔이 있기에

윤재영 2006. 3. 8. 01:18

누군가의 아픔 있어

 

 

아기가 없는 동료 교수가  아기를 입양한다고 했다. 아기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나 태어나자마자 아기를 데려 것이라고 했다. 비행기로 네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산모의 출산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법적서류와 그에 따른 금전적 댓가도 만만치 않게 치룬 것으로 알고 있다.

 

시간적 제한을 받고 있는 동료는 산모가 진통이 있다고 연락이 오자 남편과 함께 아기를 데리러 갔다.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고 연락이 와서 이쪽 사람들 모두들 기뻐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낳자마자 아기를 주겠다고 엄마가 마지막 서류에 사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망한 동료는 먼저 돌아 와야했고 그녀의 남편이 남아서 설득과 설득을 거듭해야 했다. 오일이 지나면서 친모 결국 동의서에 사인을 하였고 아기를 데려올 있었다.

 

소식은 학교 전체로 퍼졌고, 한달 후, 같은 동료들이 학교 휴계실을 빌어, 아기 입양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래서 나도 다녀오게 되었다. 아기가 처음으로 공개되는 날이다. 모두들 기다렸는지, 아니면 가야할 같아서 그랬는지 많이 왔다. 아기 선물이 얼마나 많이 들어 왔는지 한동안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같다. 대학 부총장, 학장, 학과장, 교수님들, 이름있고 쟁쟁한 사람들이다. 아기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돌려져 가며 선이 보여졌다.

 

사실 아기를 앉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 차례가 돌아 줄을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너무도 쉽게 나한테까지 왔다. 아기는 마치 수건이 돌려지 듯, 장난감 돌려지 듯, 물건 돌려지 , 그렇게 돌려졌다. 사람들이 아기를 앉는 방법도 가지 각색이다. 아기는 청룡열차 것 같은 기분일 것 같다. 영광인지 비극인지, 하여튼 아기는 대단한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아기를 순간,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아기가 아직 낮선 사람과, 눈에 익은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는 같다. 아기는 내게 앉기고 싶을까? 내가 아기를 앉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아기를 이사람 저사람이 앉아주는 것이 싫었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남의 아기를 안을 아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야 좋지만, 표현을 못하는 아기는 낮선 사람에게 안기는 것이 얼마나 두려울까?

 

 아기를 안아본다는 설레임에 살짝 받아 앉았다. 고맙게도 울지 않고 품에 안겨 눈을 맞추어 주는 거다. 전생의 무슨 인연있어, 엄마가 바뀐거다.  젖을 찾는 아기가 가슴을 파고 드는 같다. 엄마의 본능이 솟구친다. 일까? 가슴이 메인다. 이렇게 귀여운 아기를 떼어 주어야 했을 아기엄마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가슴이 아리다. 누군가의 기쁨뒤에 누군가의 아픔이 있었을 같아서이다.

 

생각해 보면 좋을 것도 슬플 것도 없다. 지금 나의 기쁨이, 누구의 아픔 이었고, 이고, 있고, 지금 나의 슬픔이, 누구의 기쁨이었고, 이고, 있기에...

 

그 뒷이야기는 난 모른다. 뜻대로 하소서! 머리를 조아릴 뿐

 

 

 

 

2006년 3월 7일

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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