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일기 에세이

시집을 내며

윤재영 2006. 4. 18. 01:12

시집을 내며

  

 

시집을 내는 과정은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하나의 다른 눈으로 내가 나를 보는 거다. 여자 중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처음 들어가 남학생들과 교실에서 강의를 들으며 무척 신기하고 마음이 설레었는데, 지금이 바로 기분이다.

 

내고 싶은 책이 따로 있었는데, 고향을 주제로 시집을 내게 되었다. 날씨가 추워야 불을 피우듯, 동기가 나를 불렀다. 매년 아이들이 여름방학하는 오월 말이면 한국에 갔었다. 그런데 해는 못가게 되었다. 아쉬움을 달래면서 고향에 관한 시를 모아 고국에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끝이 어떻게 나는 가는 몫이 아니다. 내가 방향을 틀지만, 것은 되고 것은 거다. 날씨가 좋아 배를 띄우지만 갑작스레 변하는 기상은 어쩔 없는 것처럼. 지금까지 궁합이 맞아 모든일이 순조롭게 풀려 나갔다.

 

원고 수정을 맡치며 공중에 띄워 보냈다. 좋은 세상이다. 자판하나 누르면 태평양 바다를 깜짝할 사이에 날아 간다. 나도 그렇게 고국에 가고 싶다. 송이 꽃이 되어 피어날 거다. 개월 동안 속에 있던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은 기대감처럼 시집을 만나고 싶다. 아기를 처음 보는 순간 손가락 발가락을 세었던 것처럼 책의 얼굴을 보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길 거다. 히구, 진짜 문제의 시작은 아기를 가슴에 앉는 순간부터 인것을

 

모든 일에 시작 과정 끝이 있다 (기승전결). 시작안에 시작 과정 끝이 있고, 과정안에 시작 과정 끝이 있고, 끝안에 시작 과정 끝이 있다. 지금은, 폭풍우 치기전, 아니면 청룡열차가 위로 올라가서 내려가지 전에 멈칫멈칫 하는 바로 순간이다. 책이 나오면서 바로 아래로 내려가는 스릴을 볼거다. 순간의 고리가 연결되어 파도치는 물결처럼.

 

어떻게 비유를 할까? 앓던이를 빼는 것에서, 나이가 많이 애지중지 시집주는 , 집을 지어 파는 , 폭풍우 왔다 가는 , 애를 낳는 , 그리고 크게는 삶을 사는 , ( 정도면 나오겠다)  집을 지어 파는 것이 제일 적합한 비유일  같다

 

사람이 혼자 없는 처럼, 책을 내는 것도 혼자 없는 거다. 특히 미국있으면서 한국에서 책을 내는데는 것도 없다. 엄마가 어린아이의 투정을 받아 듯이, 알지도 못하면서 미주알 고주알 (무슨 말인지도 모르지만 꼬치꼬치 따진다는 ) 참견을 하며 불안증에 걸린 사람을 받아주고 달래주어야 하는 편집장님이야 말로 트신 분이다. 다음에 주실라나?

 

시집을 주고 나니 멍하다. 아쉽기도 하고 못해 준것이 마음에 걸리고, 시집을 가서 살려나 걱정도 되고 다시 불러 주위를 주어야 하지는 않았을까? 오늘이 일인가, 무슨 요일인가, 무엇부터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가. 분명 그동안 밀린 일들이 엄청 쌓였을 텐데, 어디서 손을 놓았는지 끈을 이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제 책상을 정리하고 미련을 두지 말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쓸려 갔던 파도가 다시와 치듯이

 

 

2006년 4월 17일

윤재영

'그룹명 > 일기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어쩌란 말인가  (0) 2006.05.16
개들의 정사, 긴 글  (0) 2006.04.21
회오리 바람 분다고 한다  (0) 2006.04.08
제가 운전 할께요  (0) 2006.04.08
학교를 옮겨주어야 하나?  (0) 2006.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