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아 가며
아이들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시험장을
찾아
가다
길을
잘
못들었다.
몇
년
전에
가
본
경험이
있어서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얼마를
달리다
보니
점점 길이
생소해지더니 이제는
온
길도
되돌아
갈
수
없게
되었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할
동네,
호랑이
소굴에
된
통
걸린
기분이었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고
인테넷에서
길을
확인했어야
하는
것을
꾀를
피우다
이렇게
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다음에는
차
안에
지도라도 가지고
다녀야
겠다.
흑인
빈민가,
이런
곳은
미국사람인
남편도
겁내는
곳이다.
어쩌다
들어서게
되면
서둘러
나가는
것을
보았다.
은근히
겁이 났다.
아이들은 그동안
엄마한테
받았던
잔소리에
대한
보복이라도
하려는지, 고기가
물
만났다고,
빨리
길을
찾아내라고 난리다.
더
가
보았자
엉키는
실이
더
엉킬
뿐이다.
길을
물어
보고
가자고
했더니
안된다고 펄펄
뛴다.
양반
체면이라
굶어도
에헴하겠다
이
말이렸다.
흠,
남편을
비롯해
왜
그렇게
길을
묻는
것을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남자란
자존심때문인가?
마침
허름한
차
정비소에
사람이
하나
보였다.
아이들이
말렸지만
운전대는
내가
쥐고
있다.
차를
세워
길을
묻자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종이에
지도를
그려하며
묻고
되
물어
확인
했다.
혹시
길을
잃으면
아무에게
물어
보지
말고
약방에
가서
물어
보라는
주위도 주었다. 무엇이
위험하다는
건가?
차를
뺏기고 금품이라도
뺏긴다는
건가?
겁탈이라도 당한다는
건가? 총을
맞는다는 건가? 우리가 고양이
앞에
생선같이
보였는 모양이다.하여튼, 얼마나
고마운지
돈을
받는 다면 주고
싶었다.
두
녀석
초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해
왔고
단을
땄다.
폼을
잡고
다니드만,
겁에
질려,
잔소리해대는
꼴이란,
"야,, 너희들
태권도는
그냥
시켰는
줄
아니?”.
갱단은
자기네
영역
침범을
싫어
한대나.
아무리
날고
기어도
총알을
막을
수
없대나
하면선 댓구를 한다. 아이들이
참
여리게
컷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사,
승산
없는
싸움에서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다.
여섯 째 신호등에서 돌라고 했다. 신호등 하나, 둘까지는 잘 세었다. 하지만 그 이후, 세번째인가 네번째인가? (히구, 이럴 줄 알았다. 이 것을 잘 헤아릴 정도라면 처음부터 길을 잃어 버리지 않았을 거다.) 머리 컷다고 고집피우는 녀석들 도움이 안된다. 한참을 달린 것 같았고 또 다시 길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이젠 다 포기하고 안전하게 집에 돌아가기라도 했으면 좋을 정도였다. 순간,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에서 뼈만 앙상이 남았던 고기가 생각났다. 내가 혹시 그 고기가 되는 것은 아닌가?
달리다
보니 멀리서 눈에 익은 고층 빌딩이 보였다. 살았구나
희망이
생겼다.
노아가 오랜 비 끝에 비들기를 본 그
기쁨일 거다. 꿈과
희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
어둠
속에서는
단
오분의
거리라도
한참을
달리는
것이고,
희망속에서는
아무리
오래
달려도 기쁜거다. 갈림길이
나왔다.
그
정비공이
말
해
주던
길이었다.
그냥
집으로
갈까 망설이다
한
번
더
모험을
하기로
했다.
정비공이
말
해
준대로
약방에
들러 길을
물어
보고
찾아
갔다. 사실 거리에는 물어 보고
자시고 할,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비록
헤매고
다녔지만
온실속에서
크는
아이들에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을 시켜준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해야
하다니,
비극적인
현실이다.
아이들이,
사회의
고질병인
빈부의
차이,
인종문제,
가난이
낳는
사회
폭력,
이런
사회
문제에
눈
돌리거나
피하지
말고,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데
협력하고
무지를
깨고
정의를
위해
베푸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을
부려본다.
2006년 8월 4일
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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