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일기 에세이

마지막 강의

윤재영 2005. 11. 19. 05:23

마지막 강의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시무룩한 목소리다. 무슨 일인가 했다. 다음에 가르쳐야 할 과목이 취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인간발달 과목이 끝나면 가족과 결혼 과목을 가르치기로 되어 있었다.  , 남편한테 미안하지만 내게는 좋은 소식이다. 속으로 은근히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쫒기지 않고 여유있게 이번 가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시간강사가 그렇다. 가르치는대로 돈을 받는다. 돈이 눈앞에 삼삼하다. 하지만 난 당장 굶어도 에헴 체면을 차려야 하는 가난한 선비다. 굶지만 않으면된다. 남편이 벌아다 주는 돈으로 먹고 살수는 있다. 그러면 되었다.

 

가르치는 것도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 과목은 재미가 없다.  획기적으로 강의 방식을 바꾸어 가르쳐 보고 싶지만 투자에 비해 소득이 없을 것이며, 그렇게 했다가는 오히려 미운 오리새끼만 될 뿐이다. 그런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잘 됐다.

 

그러니까 올 해로서 이번 강의가 마지막이다. 아니, 평생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인간 발달, 십년을 넘게 가르쳐왔다. 아니,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내가 배웠다. 가르칠 적마다 새로운 과목이다. 내가 변하니까 책을 통해 이해하는 감각도 변한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내가 이해 하는 만큼 학생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하니 나의 책임이 큰것이다. 하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수학공식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강의가 밤 8시에서 10시까지 있다. 학생들의 나이는 삼십대에서 때로는 퇴직한 노인도 있다. 간호사, 군인, 보험회사원, 경찰, 은행원, 심지어는 목사님들도 있다. 이들이 하나 같이 궁금해 하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는 것이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승진시험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늦은 시간에 열심히 나와 강의를 듣는다. 그 순간 난 한 인생의 배를 이끌고 가는 선장이 된다.

 

잘 가르치고 못 가르치는 것은 둘째다. 어린아이 같이 배우려는 마음의 자세를 갖도록 해야 배가 뒤집히지 않는다. 그것은 선장의 몫이다. 첫 수업시간에 짊어지고 온 짊들을 내려 놓고 몸만 가볍게 타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짊싸는 것을 배웠다. 이제 다 왔다. 무사이 도착했다. 짊을 돌려 주어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하는 가는 그들의 몫이다. 나도 미련없이 문을 닫고 나의 짊을 싸야할 시간이다.

 

 

 

2005년 10월 7일

윤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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